글로벌포커스
"거리엔 시신 쌓여있어" 이란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
중동의 화약고 이란이 47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으며 거대한 폭발 직전의 다이너마이트처럼 타오르고 있다. 히잡 의문사 사건 이후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2주 넘게 이어지며 단순한 항의를 넘어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인터넷 차단과 강력한 정보 통제로 인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사망자가 이미 2,000명을 넘어섰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이번 유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참혹한 수준의 경제난에 있다. 이란의 리알화 가치는 최근 10년 사이 4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며 사실상 종잇조각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2015년 핵합의 당시 달러당 3만 2,000리알 수준이던 환율은 최근 시장 환율 기준 147만 리알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국 화폐 가치가 붕괴하자 수입 물가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지난달 식료품 물가는 전년 대비 72%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했다. 빵과 우유 같은 생필품 가격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진 시민들이 결국 생존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시위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정권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던 시장 상인들이 대거 시위에 동참하며 동맹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수도 테헤란의 상인들은 지난달 말부터 일제히 가게 문을 닫고 저항의 뜻을 밝히고 있으며 여기에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의 불길은 이란 전역으로 번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이란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과 좌절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며 이번 사태가 정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란 정부의 대응은 처참할 정도로 잔혹하다. 개혁파로 분류되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조차 폭도들이 사회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며 강경 진압을 공식화했다. 보안 당국은 시위대를 향해 군용 소총과 산탄총을 난사하고 있으며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동원해 무차별 진압에 나서고 있다. 인권 단체 이란 인권은 확인되지 않은 보고를 토대로 사망자가 2,000명을 넘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통신 역시 최소 538명이 사망하고 1만 명 이상이 구금되었다는 참혹한 통계를 내놓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분노한 시위대의 화살은 이제 이란의 절대권력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향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하메네이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영상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1979년 혁명으로 쫓겨난 팔레비 왕조의 귀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하메네이는 시위대를 트럼프를 기쁘게 하는 폭도라고 규정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거리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최악으로 치닫자,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긴박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이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며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됐다고 개입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미 미 국방부는 이란 내 반정부 세력 지원이나 군사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타격 옵션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조치 직후 나온 발언이라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줄곧 이란을 주적으로 여겨온 이스라엘 역시 투쟁 지지를 선언하며 미국과 군사 개입 방식에 대한 조율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즉각적인 보복을 예고하며 맞불을 놨다.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미국이 군사 행동을 감행할 경우 이스라엘 점령지와 미군 기지 그리고 주요 해상로가 모두 합법적인 표적이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란 의원들은 회의장에서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페제시키안 대통령 역시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노렸던 것처럼 이란의 자원을 약탈하려 한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현재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이란 외무장관은 레바논 방문 중 미국과 이스라엘이 평화적인 시위를 폭력 사태로 변질시키고 있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국영 매체들 또한 방화와 폭력의 배후에 외세와 연계된 테러 요원들이 있다고 선전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47년간 이어진 신정체제의 견고한 벽이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유혈 진압으로 다시 침묵의 시대로 돌아갈 것인지 이란은 지금 운명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실제 군사 개입 여부에 따라 중동 전체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외침과 권력을 지키려는 정권의 총구가 부딪히는 테헤란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위태롭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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