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6일, 경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조인트 팩트시트'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고 엇박자를 내온 대북 정책의 조율을 위한 정례 협의의 막을 올렸다.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첫 협의에는 우리 측에서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미국 측에서는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각각 수석대표로 나섰다. 양국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총출동한 이번 협의는 기존의 소통 채널을 활용해 대북 정책 논의를 정례화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으나, 과거의 '한미 워킹그룹'처럼 별도의 공식 협의체를 출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외교부는 선을 그었다. 일단 양국은 흩어져 있던 대북 논의 창구를 하나로 모아 정기적으로 마주 앉는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번 협의는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대북 정책의 핵심 부처 중 하나인 통일부가 전날 돌연 협의 불참을 선언하며 독자적인 대북 협의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내 대북 정책 라인의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정책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외교부는 당초 '대북정책 정례협의'라고 밝혔던 회의 명칭을 통일부의 반발을 의식해 하루 만에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로 급하게 변경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통일부가 '대북 정책'이라는 명칭을 외교부가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한미 간의 중요한 논의를 앞두고 우리 정부 내부의 교통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자인한 꼴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기술적 논의지만, 그 이면에는 대북 접근법을 둘러싼 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우리 정부는 내년부터 남북 대화 재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고 예고하며 유화적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반면, 미국은 현재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인권 문제 압박을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를 대비한 핵심적인 협상 카드로 여기는 기류가 강하다. 속도를 내려는 우리 정부와 신중하게 카드를 쥐고 있으려는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을 이번 정례 협의를 통해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양측이 '시너지 극대화'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서로 다른 셈법 속에서 보폭을 맞추기 위한 험로가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이견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내부에서 노출된 갈등 그 자체를 미국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동맹파'와 통일부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의 대립으로 비치는 현 상황은 대북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을 수밖에 없다. 미국 측에서는 이번 협의를 계기로 한국 정부 내의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대북 정책의 혼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협의는 단순히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를 넘어, 삐걱거리는 한미 공조의 톱니바퀴를 맞추고 대외적으로 노출된 우리 정부 내부의 균열을 봉합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